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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맑고 크낙한: 한국 단색화 거장전
2023.05.12 - 2023.07.09
Canvas N Gallery
“주문을 외우듯, 참선을 행하듯, … 되도록 단조로운 행위의 반복을 통한 수련과정에서 스스로를 참고 억제시켜감으로써, 끝내는 거기서 환히 열리는 드맑고 크낙한 해방의 경지를 노닐고저 함일러라.”[1] – 이우환
캔버스N 갤러리는 오는 5월 12일부터 7월 9일까지 개관전으로 소장품 기획전 《드맑고 크낙한: 한국 단색화 거장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1970년대 한국 미술의 대표 성과라 할 수 있는 단색화의 시작부터, 2000년대 동시대 단색화까지 14명 거장들의 회화 23여 점과 판화 14여 점을 망라한다.
드맑게 채우다 : 반복하여 이룩하는 해방의 경지
김환기(1913-1974)는 70년대 한국의 추상 회화의 포문을 열었다. 그는 일본 활동 후 1930년대 후반 한국으로 귀국하여 서구를 따르지 않고 조선시대 미술, 한국 전통 미술과 자연을 따르기 시작했다. 절대적인 아름다움, 영원한 것을 모색하던 작가의 관심은 결국 우리의 전통, 자연과 맞닿아 있었으며 이는 다시 자연으로 ‘환원’된다. 특히나 백자를 모티프로 하여 작업을 했던 김환기는 해외에 나가게 되면서 백자를 아예 모르는 외국인들이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조형 언어를 고민하게 되고, 그 결과 1970년 화면을 점차 점으로 뒤덮는 전면점화가 등장하게 된다. 그가 활동 초기부터 끊임없이 천착했던 자연 대상(새, 달, 구름)의 모습에서 선과 면이라는 조형 요소를 발견하여 구도를 찾는 실험을 지속했다.
이러한 작품에는 동아시아의 오랜 우주관인 ‘천원지방(天圓地方)이 담겨있다. 이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는 뜻으로, 김환기 전면점화의 기본 모티프가 되는 둥근 점과 그를 감싼 사각형 테두리와 연결된다. 여기서 그가 묘사하는 둥근 점이 상징하는 달은 우주의 함축인 것이다. 이러한 사각형과 점들은 리드미컬하게 배열되거나 간결한 색면이 배치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그가 캔버스에 구축한 우주는 관람자에게 숭고함을 느끼게 한다.
김환기의 한국적 유화는 그의 첫 제자였던 박서보를 위시한 단색화 화가들에게로 계승된다. 한국 고유의 전통적 모티프들을 추상의 흐름으로 부활시킨 김환기 세대의 노력이 제자 세대에 이르러 발전된 미학적 담론으로 자리 잡게 되며, 이는 곧 ‘단색화’라는 개념의 초석이 된다.
본격적인 단색화라는 담론을 주된 논의로 이끌어낸 주요 인물로 김환기의 첫 제자인 박서보(b.1931)와 이우환(b.1936)이 거론된다. 이 시기 각각 한국과 일본에서 현대미술의 방향을 고민하던 두 사람이 서로 교류하며 일궈낸 것이 바로 단색화라 할 수 있다.
1970년대에 시작을 알렸던 단색화는 색채의 의미를 배제하고 반복적인 형상, 행위의 흔적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특히 무한 반복을 통해 정신적이고 내면적인 수양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서구의 작품들과 다른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한다.
박서보는 <묘법> 연작으로 이름을 알렸다. <묘법>은 연필로 촘촘하게 그어냈던 첫 출발 이후 바탕색, 물감의 점도, 선의 형태와 층 등을 만드는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하며 발전해 나아갔다. 무수한 작가의 움직임은 곧 단일한 형체라는 모순을 이루며 완성된다. 박서보는 이와 같은 일련의 반복적인 작업을 통해 “근대미술이 쫓던 이미지라는 환상을 탈피하고 그것으로부터 해방”되어 “비로소 참다운 해방감"을 맛본다고 언급한다.[2] 이번 전시에 걸린 <묘법>은 90년대 이후 캔버스 위에 몇 겹의 젖은 한지를 활용해 일정한 간격의 직선을 긋는 방식으로 제작된 시리즈 중 하나로, 작가에 따르면 젖은 한지의 특징과 작가의 노력이 서로 교전하고 씨름하는 노동의 결과물이다.
이우환은 캔버스에 천연안료, 오일 등 서양화 재료를 활용하여 제한된 색채로 여백의 의미를 강조한다. 작가가 캔버스에 부과한 물리적인 움직임에 따라, 즉 작가가 작품에 가한 만큼의 신체 에너지가 그대로 화폭에 남게 된다. 이우환은 “바둑판 위에 한 점만 놓아도 바둑판이 팽팽하게 긴장된다"[3]라는 비유를 들어 점을 찍거나 선을 긋는 것과 같은 최소한의 행위로 세계와 사물을 활성화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4] 즉 물체에 근본적인 존재성을 부여하여 물체와 공간, 인간 사이의 관계 등의 파악에 주력하는 것이다.
김창열(1929-2021)은 1970년대 초반 이래로 빛을 머금은 물방울을 단색조 화면이나 문자가 그려진 화폭에 그려 넣는 특유의 화풍을 창안해 냈다.
‘물’이라는 것은 본디 생명력을 상징한다. 여기에서 파생되어 물은 곧 순수함과 환원, 근원, 정화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마치 곧 캔버스에 흡수되어 버릴 것만 같은 이러한 의미의 물방울들은 캔버스 위에서 작가에 의해 영원히 남게 된다. 이처럼 김창열은 실재와 허구, 환상과 사실의 세계를 겹쳐 놓는다.
1989년경부터 김창열은 동양적 정서로의 환원 의지를 보다 강력하게 드러냈는데, 전시 후반부에 볼 수 있는 천자문과 물방울의 조화를 보여주는 ‘회귀(Recurrence)’ 연작이 바로 그것이다. 어린 시절 조부로부터 배운 서예의 경험을 살려 작업한 천자문은 작가에게 가장 근원적이고 친숙한 문자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 그는 한 바퀴 돌아 본래의 자리로 돌아온다는 의미를 지닌 회귀를 명제로 하여, 마포와 유채에 한지와 먹을 더하며 캔버스 위에서 동서양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조형 의지를 펼쳐 나갔다.[5]
1970년대 단색화 화가들이 닦아놓은 길에 크게 영향을 받은 동시대 작가 이배(b.1956)는 숯을 활용해 작업한다. 동양화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먹의 묵색과 같은 이배의 숯은 각도에 따라 달라지며 신비하고도 성스러운 느낌마저 자아낸다. 숯이라는 소재는 상징적이다. 나무가 모두 타버린 흔적이지만 동시에 불이 붙으면 다시 살아나는 잠재적인 생명력, 힘을 지닌 소재다. 이배의 작품에서 그러한 숯의 에너지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배의 대표작인 <불로부터>와 함께 또 다른 대표작 <무제> 연작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2009년부터 작업하기 시작한 <무제> 시리즈는 ‘반복’에서 비롯된 산물이다. 작가는 그림의 모티프가 되는 결정적인 획을 갖기 위해, 숯 조각으로 종이에 20~30회 그려낸다. 유일한 획을 찾으면 자신의 손이 머리보다 앞서가도록 선택한 획을 여러 번 반복한다.[6] 작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반복함으로써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잊고, 자신의 정체성을 잃는다. 결국에는 반복만 남는다. 우리는 창조적인 몸짓을 탄생시키고, 죽게 하고, 재탄생시키는 것처럼 보인다.”[7]
크낙하게 확장하다
반복에 반복을 더하는 작업은 김택상(b.1958)으로 이어진다. 김택상은 캔버스에 안료를 희석해 켜켜이 층을 쌓아 올리는 수행을 반복한다. 희석된 입자는 평면에 강한 질감과 촉각성을 부여하여 완성된 작품은 마치 빛의 흔적과 같이 오묘함이 느껴진다. 쌓인 층 사이로 마치 일렁이는 듯한 빛깔은 작품을 생경하게 마주할 수 있도록 한다.
붓 자국을 최소화하고, 돌가루를 사용하여 마치 분청질을 한 듯한 김근태(b.1953)의 작품은 질료의 특성이 아름답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작가는 희석한 돌가루 반죽을 접착제와 섞어 묽은 농도의 독자적 매체를 만든 후 이를 캔버스에 부어 흐르도록 놓아두기도 하고, 캔버스 방향을 직접 조절하기도 한다. 물감을 끊임없이 두껍게 쌓아 올리는 반복적인 행위는 작가 스스로가 발견한 한국 정신의 미학, 즉 텅 빈 가운데 고요한 숭고함을 담아낸다.
1970년대에는 단색화의 흐름과 함께 새로운 매체에 대한 갈망의 해소, 앵포르멜, 추상과 반추상 등 다양한 예술적 고민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전위 예술 또한 각광받기 시작했다.
먼저 이건용(b.1942)은 한국의 전위예술을 이끌었던 A.G.(Avant Garde, 1969-1975)와 ST(Space and Time, 1971-1981)의 주요 멤버로 활동했던 작가다. 작가는 눈으로 캔버스를 보지 않고, 팔이나 다리 등 ‘신체’가 허용하는 범위 속에서 일련의 선을 남기는 반복적인 과정을 통해 바로 지금, 작업을 하는 순간의 신체, 장소, 관계 등에 대한 사유를 담아낸다.
작가는 “회화라는 게 긋는 것이 지우는 작업이다. 그러니까 사실적으로 그리는 사람도 필요 없는 것은 다 지워버리고, 물감으로도 지우고 필요한 것만 남긴다”[8]라며 주체마저도 비워낸다. 즉 창작의 목적성이나 의도까지 배제하고 순수한 신체의 움직임을 통해 작가는 세계와 연결된다.
이강소(b.1943)는 이건용과 함께 입체, 설치, 퍼포먼스 작업을 활발히 전개해 나가며 실험 미술의 대표적인 작가로서의 입지를 구축해 나갔다. 이어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캔버스로 옮겨와 단색화 흐름에 합류하게 되는데, 오리, 사슴, 배, 새 등의 제한된 이미지들이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작가는 이러한 모티프들이 유년 시절 보았던 풍경에 기인한다고 밝혔다.
작가는 언젠가 과천 동물원의 연못에서 본 것들로 오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놀고 있는 그 느낌을 “리듬”으로 느끼며 그렸다고 전한다. 대상을 그대로 묘사하기 보다는 생명력을 가진 존재의 움직임들을 몇 개의 획으로 간단하게 표현해내는 것이다.
윤명로(b.1936)는 요동치며 어딘가에 부딪혀 파열된 듯한 바람의 숨결을 화폭에 펼쳤다. 작가의 바람이 거칠게 느껴지는 까닭은 ‘싸리 빗' 사용에 있다. 작가는 주로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생기, 숨, 바람을 시각화함으로써, 즉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끔" 하며 한국 추상화의 새로운 길을 닦았던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윤명로가 바람을 다루었다면 심문섭(b.1943)은 바다를 다룬다. 그의 작품은 때로 거칠고 때로는 잔잔하며, 깊이와 드넓음을 지니고 있다. 그는 고향인 통영 앞바다의 모습을 참고하여, 끊임없이 변화하는 바다의 모습을 반복적인 붓질과 오묘한 빛깔로 표현한다. 이러한 작가의 특색은 회화 세계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그의 뛰어난 능력과 예술적 감각을 보여준다.
윤형근(1928-2007)은 다색(땅의 색)과 청색(하늘의 색)이 캔버스에 스며들도록 반복해서 작업한다. 우연히 퍼져 나간 색들은 스스로 하나의 색채 기둥을 이루며 여백에 침투한다. 그려진 결과물은 물리적인 대상이 되기보다 캔버스와 스며든 색상이 일체를 이루게 된다. 먼저 칠한 면을 덧칠해 나가는 반복적 과정을 윤형근은 ‘지우기'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곧 신체적 반복을 통해 형체를 비워내고 정신적인 영역을 좇는 단색화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
박석원(b.1942)은 평생을 걸쳐 시간과 물질을 조각이라는 매체를 통해 누적해 왔다. ‘덩어리’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자르고 쌓아 올렸던 작업을 반복하던 작가의 관심은 거석과 굵은 나무줄기뿐만 아니라, 1980년 ‘닥’과 한지의 물성으로 확장되었다. 박석원은 뭉쳐지고 합해지는 종이 뭉치의 표면을 발판 삼아 드로잉과 구김 작업, 반복된 절삭의 흔적을 새겼다.
작품의 제목인 ‘적의’, 뜻을 쌓아 올린다는 의미이지만 영어로는 ‘Mutation-Relation’, 관계에 의한 ‘변용’ 내지 ‘변이’가 강조된다. 제목에서처럼 작가는 다양한 형태의 덩어리들을 분절시키기도 하고, 결합하기도 하며 자연과 인간의 결합을 꿈꾼다.
전광영(b.1944) 역시 질료에 집중한다. 유년 시절 큰할아버지가 운영하던 한약방에서 본 종이 약봉지와 한국 고유의 보자기 문화에 착안한 그는 작은 조각들이 화면을 율동적으로 구성하던 평면적 실험에서 시작해 점차 일상 공간에 침투하는 조각의 개념으로 작품 세계를 확장해 나간다.
대표작인 ‘집합(Aggregation)’ 시리즈는 한지로 섬세하게 싸고 묶은 삼각형 오브제를 천연 염색 기법으로 물들인 후 재배열하여 하나의 집합체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때 사용한 한지는 옛 신문, 소설 또는 이름 모를 가문의 족보, 장부 등인데, 이를 통해 특정 시대를 살아간 개개인의 경험과 삶의 이야기를 ‘집합’하여 해체하고, 또다시 배열하여 ‘집합’시킨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드맑고 크낙한: 한국 단색화 거장전》은 단색화가 다져온 과거와 현재를 기념하고 작가들이 관통하는 교차점을 드러내고자 한다. 이전 세대 작가들의 오랜 노력과 수행으로 이어져 온 작품들을 통해 초기 단색화에서 지향한 “드맑고 크낙한” 해방감, 나아가 한국 정신문화의 전통을 감상할 특별한 기회가 되길 바란다.
[1] 이우환, “박서보, 또는 단념의 양식에 관하여”(1974), 『Travel Diary of the Hand – The Painting of Park Seo-Bo』, 전시 도록, 통인화랑, 1976.
[2] 이흥우, “화가의 하루 - 박서보", 『화랑』 (1977년 겨울): 71.
[3] 오광수, 「화가 이우환씨와의 대화, 점과 선이 행위하는 세계성」, 『공간』 (1978년 5월): 41.
[4] 권영진, 「1970년대 한국 단색조 회화 운동 – ‘한국적 모더니즘’에 대한 비판적 고찰」 (박사학위논문,이화여자대학교, 2014), 118.
[5] 『제주 도립 김창열 미술관 소장품』,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2020), 200. ; 이와 같은 작가의 동양 회귀의 회화 의지는 단색 화가 추구했던 무위자연, 선비문화의 사의성 등의 한국문화의 정신적 가치를 내면화하기에 1970년대 후반부터 그의 물방울 그림은 국내 화단에서 단색조 회화로 구분되어 갔다. 최정주, 「김창열의 ‘물방울’ 그림에 담긴 실제와 관념의 통찰」, 『열린정신 인문학연구』 22 (2021): 317.
[6] 김현숙, 「이응노, 이배, 마츠타니 타케사다의 작품에서 반복과 무념무상(無念無想)」, 『예술과 미디어』 19 (2020): 47.
[7] Henri-Fran çois Debailleux & Lee Bae, Plus de Lumière (Saint Paul de Vence: Foundation Maeght, 2018), 24, 앞의 글 48에서 재인용.
[8] 이우상, 「Special Interview 이건용 작가 “자기 생각대로 살았고 자기 생각대로 표현한 작가”」, 『서울문화투데이』, 2022년 8월 3일.